세상과 사는 이야기2011. 9. 27. 08:39

예나 지금이나 대학 들어가기 참 어렵다.

입학후 방황과 함께 그동안 못 놀았던 것을 보상이나 하는 듯이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2학기가 되어서도 어른들의 불안한 눈초리와 함께 겨우 겨우 학교에 출석이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2학기에 배우던 교양 역사시간에 만난 젊은 강사가 지나가는 듯이 툭 던진 한 마디(그때 그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한계점을 시험해보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다...뭐 이런 이야기였다)에 스스로 시험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좀 했었다.  당시에 스스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선 안에서는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전액 장학금을 받게된 것이다. 지금은 달라진 것 같지만 당시에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고 등록을 하면, 학교에서 다시 등록금을 돌려주는 절차로 장학금이 수여되었었다. 등록금에서 총학생회비, 육성회비(잘 기억 안나지만) 등 몇 만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다시 돌려받았다. 현금으로 받는 방법과 은행계좌로 받는 방법이 있었는데, 뭔 생각이었는지 그걸 현금으로 수령했다.

 

현금을 직접 수령해야 내가 전액 장학금을 받았구나 라고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 같기도 했고, 등록하고 다시 등록금을 환불받기까지의 몇 주간의 기간을 혼자만의 기쁨을 누리며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전하지 않았었다. 사실 그 사이에 뭔가 부모님께 혼날 일이 있으면 그걸로 무마시켜야지 했는데 별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__^

 

친구 몇 명을 호위 무사처럼 거느리고 당당하게 집안에 입성했다 ^^;;;;  갑자기 들이닥친 친구들에게 엄마는 밥상을 차려주시면서도 얘들이 뭐 때문에 이렇게 즐거워하나 의아해하셨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아빠와 엄마와 함께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거금, 무지막지하게 거금이 든 돈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라도 두둑하지는 않았던 것이 학교에서는 장학금으로 줄 정확한 금액으로도 된 자기앞수표로 돌려줬었다. 무작정 내민 돈봉투에 부모님의 의아해하셨고, 전액 장학금인데 뭐뭐 빼고 그만큼이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두 분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두 분이 좋아하는 틈을 타서 "저기, 친구들한테 한턱 내야하니까 쬠만 내주셨으면 하는 희망이 있네~~"라고 애교파를 살살 뿌렸다. 엄마는 얼마? 몇만원이면 되지?라고 바로 기분 좋게 대답을 하시는데, 아빠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거였다. 아, 힘들게 등록금 마련해주셨던 건데 괜한 얘기를 했네... 싶어서 아냐 됐어 됐어, 그냥 알바한 걸로 애들한테 한턱 낼게요했다. 엄마는 친한 친구들한테 한턱 내는 게 좋겠다 싶으니 용돈 좀 주마 다시 한 번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순간 아빠가 약간은 엄하신 모습으로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니 이건 네거다." 라는 말씀(꽤 오래 지났는데 그 토시까지 정확히 기억난다)을 하셨다. 등록금은 지금에도 큰 돈이고, 당시에도 큰 돈이다. 일반적인 대학생이 한 손에 덜렁 들고 캄사합니닷!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닌 것이다. 상황파악이 안 된 나는 아빠 난 한 오만원만 주셨으면 하는 희망인데...라고 다시한번 슬쩍 의견을 피력했고, 두 말하지 않는 아빠의 성격을 잘 아시는 엄마는 옆에서 순간 푸르륵한 얼굴색을 보여주셨다.

 

아빠는 그 모든 암묵적 의견을 무시하신채, "너도 사회를 알아야 한다. 네가 열심히 하면 기대 이상의 이런 큰 재화도 얻을 수 있다. 단지 이걸 네가 어떻게 쓰느냐는 너의 또 다른 책임이다. 이 돈으로 네가 입고 싶어하는 예쁜 옷을 사서 입던, 친구들과 맛난 걸 사먹던, 네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사놓고 읽던, 저금을 하고 필요로 할 때 꺼내서 쓰던 아빠는 아무런 참견도 하지않고 설사 마음에 안 들더라도 꾸중하지 않을 것이다. 네 맘대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하도록 해라. 단지, 지금 아빠는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1등을 했고, 장학금을 받았고 그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기쁘다."라고 말씀하셨다. 표정관리 안 되시는 엄마에게도 양해를 다시 구하시곤 돌아온 거금을 다시 내게 내미셨다.

 

5만 원 정도면 고맙게 받았을 것이고, 10만 원 정도면 좋아서 데굴데굴 굴렀을텐데, 너무나 큰 거금앞에서는 그저 쪼그라든 심장이었다. 잠 못 자고 그 돈의 사용처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 학원을 등록하기로 했다. 전공이 실기복합형이라 실기학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좋은 학원코스는 대학 등록금의 30%정도였고, 해당하는 학원비를 부모님께 달라고 할 수 없어서 한 학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 학기는 학원을 다니려고 했었는데 바로 학원에 등록하여 다닐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소소하게 한턱냈다. 만약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더라면 거기에 보태서 더 크게 쓰고 놀았겠지만 '네 책임이니라...'라는 아빠의 말씀에 걍 소소하게 치루고 말았었다.

 

아빠의 당시 결심은 쉽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한다. 부자도 아니었고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계획된 경제 생활로 세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계신 부모님 입장에서는 한학기 대학등록금은 무척이나 큰 돈이었다. 다른 돈도 아니고 학원비를 달라고 하기 어려웠던 것이나, 책값이나 재료비 대부분은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스스로 해결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집안의 경제상황을 알고 있기에 아빠의 그 결심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저 말씀으로만 했더라면 이렇게 오래동안, 가슴 깊이 남아있을 거 같진 않다. 유독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과를 선택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그게 죄송해서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벌어쓰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대학원 졸업까지 몇 번의 등록금을 신세진 것 외에는 경제적인 부담을 거의 드리지 않았었다.

 

그 이후 장학금을 받더라도, 아빠는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하셨다. 재수를 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복학한 오빠까지 가세하면서 삼형제가 동시에 대학에 다니게 된 것이 이유인데, 물론 서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지금도 생각해보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한학기도 휴학을 하지 않고 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한 부모님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는 바이다.


결국 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독립을 하기까지 아빠의 그때 그 가르침 그대로 살고 있다. 그걸 어떻게 잊고, 어떻게 놓치겠는가.
Posted by 네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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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댓글입니다

    2011.09.27 09:17 [ ADDR : EDIT/ DEL : REPLY ]
  3. 아.... 아버님 멋있으십니다!
    꽉 조이는 것 보다 확 풀어줄 때 더 무서워지는 경우가 있죠...!

    2011.09.27 09: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캬~~~~~~~~~~~!!!!
    아버님 짱~!!!!!!!!!!!!
    완전 멋지십니다^^

    네오나님이 아버님 성격 닮으셨죠???ㅎㅎㅎ
    크하하하...
    대범하시고...
    멋지세요~~아부지~!!!!!!!!*^^*

    2011.09.27 09: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정말 멋지고 존경스러운 아버지시네요~^^
    삼형제를 동시에 대학을 졸업시키다니...진짜 대단하신 부모님이세요~^^
    효도 많이 많이 하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by 아내-

    2011.09.27 09: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어버이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화요일을 화사하게 보내세요~

    2011.09.27 10: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아버님께서 대단한 결정을 하셨군요.
    부모의 은혜는 끝이 없나 봅니다.

    2011.09.27 10: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아버님 너무 멋있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기 쉽지 않으실텐데~ 말입니다 ㅎㅎㅎㅎ

    2011.09.27 10:43 [ ADDR : EDIT/ DEL : REPLY ]
  9. 아버님의 결정이 정말 멋있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버지도 아마 저러했으리라 짐작만 해볼뿐... 그럴 기회를 못드린게 죄송할 따름이네요 ㅎㅎㅎ

    2011.09.27 11: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아버님도 훌륭하셨고
    네오나님도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감동넘치는 한편의드라마를 보고갑니다.
    더 큰 성공이 네오나님을 기다리고 있을것 입니다.

    2011.09.27 12:44 [ ADDR : EDIT/ DEL : REPLY ]
  11. 아!! 아버님이 너무 멋지신데요??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

    2011.09.27 13: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아주 멋쟁이 아버님이세요... 통큰 교육으로 큰 가르침을 주시네요....^^

    2011.09.27 14:12 [ ADDR : EDIT/ DEL : REPLY ]
  13. 아버님 정말 너무 멋지시네요..^^
    잘 보구 갑니다~1

    2011.09.27 14: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아버님의 가르침이 너무 멋지십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조금(?) 아까워 하셨네요.

    2011.09.27 14: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훌륭하신 아빠세요~ 지금은 독립했다는 건가요? 집에서 나와 따로 사시는거에요?

    2011.09.27 16: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아버님도 멋지시지만,
    네오나님도 멋지십니다~ㅎ
    장학금이라뇨..전 정반대로, 영점대의 방어율을 자랑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네요^^

    2011.09.27 17: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대단하신 가르침입니다. 스스로의 책임감을 그 때부터 느껴야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2011.09.27 17: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저도 첫 장학금 받았을때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그런데 현금으로 돌려주지 않아서 느낌이 별로 안살더라구요..ㅋㅋ

    2011.09.28 08: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정말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저는 장학금을 받아서 몰래쓴 경험이..ㅎㅎㅎ;;

    2011.09.28 11: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저도 네오나님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산지가 오래되다보니... 넘 부럽기만 하네요..^^

    2011.09.28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정말 멋진 아버님이시네요^^
    역시 부모의 역할이란 정말 큰 것 같아요.

    2011.09.29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