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는 이야기2011. 10. 27. 08:23



아빠의 피부는 남자치고는 상당히 약한 편이시다.  남자용 화장품을 쓰면 화끈거리고 냄새도 너무 강해서 싫어하시는 한편 내가 쓰는 것을 사다드리면 대부분 만족해 하신다. 진짜 좋아서 만족해 하시는 걸 수도 있고 막내딸이 사다드리는 것이니 그냥 좋다하시며 쓰시는 걸 수도 있다.

라인별로 갖춰서 사용하시는 건 귀찮아하시지만 토너와 로션류 정도는 좋아하시고, 날이 건조해지면 수분 크림 하나 더 사다드리면 아주 좋아하신다. 그 좋아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잘 챙기는 편인데 지난 여름에는 친구에게 추천 받은 알로에 크림을 써보니 좋아서 아빠에게도 한 통 사다드렸었다.

여름이라 화끈거리는 피부를 진정시키기에 괜찮았던 알로에 크림이 마음에 드신다고 두어번 언급하신 적이 있어서 나중에 또 사다드려야겠군 이란 생각을 했다. 지난 주에 본가에 갔더니 아빠는 알로에 크림이 아주 좋아서 잘 썼다하시며 요즘은 새로운 크림을 쓰고 있으니 당분간은 안 사와도 된다는 얘기를 하셨다.

오히려 새로운 크림이 더 마음에 드신지 냄새도 좋고 끈적임도 없고 흡수도 잘 되고 매끈매끈하다며 칭찬을 하신다. 그럼 담에는 그거 사다드릴게요. 뭐예요?라고 물으니 뭔지는 잘 모르니 가서 보라고 하신다. 아빠는 화장품을 욕실 수납장에 넣고 쓰시는지라 욕실로 가서 확인을 했다.

욕실 수납장 제일 윗 칸이라...어디 ~ 어디 보자~~~크림이 하나 있군.
.
.
.

엉?!
SLIMMING GEL, SLIMMING GEL, SLIMMING GEL, SLIMMING GEL...
어...
모이쳐라이징 크림이라던가 안티 에이징 크림이라던가 혹은 나이트 크림이라던가 뭐 이런 단어들을 만나길 기대했었는데 전혀 다른 단어라 이것이 한번에 입력이 안 된다.
엇??!!!! 
갑자기 머리속이 당황모드로 바뀌었다.
슬리밍 젤이라... 젤 윗 칸에는 이것밖엔 없는데. "아빠 제일 윗칸에 이거 맞아요?" 라고 여쭈니
아빠는 달리 오해를 하시고는 "어, 그거 비싼 거면 그냥 둬라. 괜찮다."라고 하신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아빠 아무 이상 없으셨어요? 정말 좋으셨어요?"라고 물으니 또 다시 극찬을 하신다.

그제서야 히히힛하고 웃었다.
좋아하신다는 크림이 슬리밍 젤이라는 것이며 그 슬리밍 젤이란 한마디로 지방을 분해해서 날씬하게 만들어주는 크림이라는 설명을 해드렸다. 아빠는 당황하신 듯하셨다가 이내 웃으시며 괜찮았는데..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긴 슬리밍 젤이라면 아무래도 혈액순환도 도왔을테니 괜찮은 느낌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이들어서 얼굴살 빠지는 게 싫으시다는 아빠가 계속 사용하시는 건 당연히 좋지않을터이다.


화장품을 사다드려도 뭐가 뭔지 알아보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라...일단 영어단어에 글자가 작아서 알아보기도 어렵다...헷갈릴 것 같은 생김새의 화장품 케이스라면 아예 싸인펜으로 큼직하게 통일된 이름(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 정도)을 써놓거나 라벨을 붙여드린다. 이건 아빠 것만이 아니라 엄마 것에도 써드린다. 보통은 순서대로 화장대에 진열해 두시기에 그 순서 그대로 쓰지만 가끔 섞어서 놓으시곤 다시 물어보시는 적이 있는지라 아예 1번, 2번, 3번 순서도 큼직하게 동그라미쳐서 써드린다.

여지껏은 내가 사다드릴 때만 그랬었는데 이제는 가끔 둘러보고 다른 화장품에도 써놔드려야겠다.

지금까지 괜찮으셨다니 다행이지만 계속 사용하시면 안 된다고 못을 박으니 엄마는 아예 수영장 락커에 가져다 놓으시겠다고 한다. 이 크림도 엄마가 수영장에서 친구분에게 선물받았다가 무심결에 욕실에 두신 것이라고 한다. 저녁 먹고 산책 삼아 밖에 나가서 냄새 은은한 수분 크림 하나 사서 드렸더니 비싸다고 뭐라뭐라 하시면서도 또 좋아하신다.


Posted by 네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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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수현

    감동~먹었슴다... 진짜 효녀..네여. 저런 딸 업어주고 싶다~ㅇ

    2011.10.27 12:23 [ ADDR : EDIT/ DEL : REPLY ]
  3. 전 아직 좋은 화장품을 쓴 적이 없어서~~~ ㅠㅠ
    아버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 ^^

    2011.10.27 1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효녀에요~ 효녀~~!!
    너무 잘 보구 갑니다..^^

    2011.10.27 13: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찡하기도 하고 ㅎㅎㅎ
    아버님 얼굴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점점 나이들어 가시는 부모님도 잘챙겨 드려야겠어요 ^^

    2011.10.27 13:36 [ ADDR : EDIT/ DEL : REPLY ]
  6. ㅋㅋ 재밌네요^^ 저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구 생각납니다ㅠ.ㅠ

    2011.10.27 13: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아버님께 화장품도 챙겨드리는 효녀이시네요.^^
    슬리밍 젤을 얼굴에 바르면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

    2011.10.27 14:44 [ ADDR : EDIT/ DEL : REPLY ]
  8. 비타민

    울아버지에게 키엘수분크림을 일년에 한통씩 대용량으로 사드리는데~ 좋아하셔요~

    2011.10.27 14:53 [ ADDR : EDIT/ DEL : REPLY ]
  9. gadf

    아.. 저도 돌아가신 외할머니 살아계실 적 시골집에 갔을 때, 분홍 플라스틱에 담긴 헤어크림을 로션인 지 아시고 거울앞에 두고 쓰시던 게 생각인 나네요. 그때는 어린생각에 그저 웃긴 일이었고 외할머니도 같이 웃어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돌아가시고 세월 흐른 지금 생각나는 그 기억에 그저 가슴 한구석이 찡하네요. ㅠㅠ

    2011.10.27 15:12 [ ADDR : EDIT/ DEL : REPLY ]
  10. 그래도 기분이 좋으셨으면 그걸로 된거죠~
    네오나님은 부모님을 꼼꼼히 잘 챙기시는군요~
    저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1.10.27 15: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미영

    젊은 사람도 화장품 종류많아서 판매원한테 뭐냐고 물어보는데..연세드신분이 아시는건 더 어렵죠..ㅎㅎ
    그래도 별탈 없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저희 아버지는 암것도 안바르셔서 저는 최근에 엄마,아빠 세수하실때 좋은거 쓰시라고
    인터넷 검색하다가 아빠꺼 장뇌삼비누 엄마꺼 자음단비누 사서 드렸네요..
    근데 넘 좋아하세요..장뇌삼이 피부를 건강하게 해주고, 자음단은 여자피부엔 아주좋다는 말엔 사드린건데
    오랫만에 효도한것같아 기분좋더라구요..^^
    암것도 안바르시는분이라 천연한방비누로 대신했네요..ㅎㅎ

    2011.10.27 15:39 [ ADDR : EDIT/ DEL : REPLY ]
  12. 영어 이름은 가끔 제가 봐도 이거 뭔가 싶은게 있어요 ;;;

    2011.10.27 17: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킁킁

    전 헤어트리트먼트 얼굴에 바른적 있어요. 흡수가 더뎌서 맛사지까지 해줬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얼굴이 너무 보드랍고 화장도 잘 먹어서 어디꺼냐고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헤어제품..ㅋㅋㅋ고모가 화장품에 로션통에 담아 놓은걸 모르고 얼굴에 맛사지 함.

    2011.10.27 17:52 [ ADDR : EDIT/ DEL : REPLY ]
  14. 킁킁

    전 헤어트리트먼트 얼굴에 바른적 있어요. 흡수가 더뎌서 맛사지까지 해줬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얼굴이 너무 보드랍고 화장도 잘 먹어서 어디꺼냐고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헤어제품..ㅋㅋㅋ고모가 화장품에 로션통에 담아 놓은걸 모르고 얼굴에 맛사지 함.

    2011.10.27 17:52 [ ADDR : EDIT/ DEL : REPLY ]
  15. 요즘은 화장품 종류도 많고 용도도 다르니 정말 써놓지 않으면 모르겠어요..^^

    2011.10.27 18: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bk

    사실 본문의 내용 보다 ^^;;

    급 딸자식을 갖고 싶어지는 글 입니다. ㅋ

    전 아들래미 입니다. 저렇게 부모 챙겨 드린 일 전혀~ 없습죠. 허허헣~

    쩝 ;; 그저 딸래미가 쵝오 인듯 ㅜㅜb

    2011.10.27 22:12 [ ADDR : EDIT/ DEL : REPLY ]
  17. ㅎㅎ

    저희 아빠도 여성용 쓰시거든요~ 피부가 아주 연약한건 아닌데 그게 더 순하다구~ 그래서
    알바하고 돈 받은걸로 여성용(?) 브랜드에서 수분크림 사드렸는데 잘 맞으시데용.
    원래 화장품이 여성/남성 이렇게 있는게 아니니까요~

    2011.10.27 22:54 [ ADDR : EDIT/ DEL : REPLY ]
  18. 안녕하세연

    저희 아빠도 여성용 쓰시거든요~ 피부가 아주 연약한건 아닌데 그게 더 순하다구~ 그래서
    알바하고 돈 받은걸로 여성용(?) 브랜드에서 수분크림 사드렸는데 잘 맞으시데용.
    원래 화장품이 여성/남성 이렇게 있는게 아니니까요~

    2011.10.27 22:54 [ ADDR : EDIT/ DEL : REPLY ]
  19. 허허

    ㅋㅋㅋ잘보고갑니다
    저도 이번에 월급타고 아빠의 화장품을 사드려야 겠어요
    몰로사면 좋을지...스킨향강하게 나는거?ㅋㅋㅋ

    2011.10.28 02:28 [ ADDR : EDIT/ DEL : REPLY ]
  20. 다로롱

    저도 바디로션 슬리밍제품 쓰는데
    날씬해지는 효과는 모르겠고 쓰고나면 끈적이지 않고 엄청 촉촉한건 잇음 ㅋㅋ
    아버님 마음 이해감

    2011.10.28 08:44 [ ADDR : EDIT/ DEL : REPLY ]
  21. 슬리밍젤이 뭐지?? 하고 순간 생각했다는;;
    저도 정보가 없네요 =ㅁ=;;
    아아 지방을 없애주는데 도움을 주는 크림이구나;;

    2011.10.28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