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단지 정문에서 언니네 집으로 가려면 두 갈래 길 중 한 곳으로 가야하는데 한 곳은 빠르지만 차들과 같이 걸어야하는 곳이라 신경이 쓰여서 좀 돌아가더라도 작은 오솔길 같은 뒷길을 선호한다.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이 뒷길로 걷고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차장 쪽에서 툭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웃음 소리는 노느라 웃는 소리가 아니라 놀리느라 웃는 소리라는 걸 보았다.

세 명이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은 아이 한 명의 옷을 잡아서 당겼다 놓아서 이쪽으로 당겨지면, 다른 쪽에서 또 다른 아이가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한 아이의 옷을 잡아채고... 그걸 반복하고 있었다. 옷이든 팔이든 가방이든 잡아 당겨지는 대로 낚아채서 이리저리 밀쳐지듯 움직이고 있는 아이는 고개를 움츠리고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무를 뚫고 주차장 쪽으로 가서 "이녀석들 지금 뭐하는거냐?"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가운데 밀쳐지고 있는 아이를 내 옆으로 당겨놓고 다른 애들에게 지금 너희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아냐고 물었다. 

당돌하게 안 죽는 짓이란건 알아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저 맹랑하다고 하기에는 먹히지도 않을 것 같아서 "아니 죽을 수도 있어. 그렇게 넘어져서 머리를 바닥에 잘 못 부딪혀도 죽고, 아이와 자전거가 잘못 충돌해도 죽을 수 있어. 그런데 너희들 죽는게 뭔지나 알어? 또 죽이는 게 뭔지나 알아? 이게 무슨 비디오 게임인줄 알아?" 라고 훈계를 했더니 대번에 "아줌마가 뭔데요?" 한아이가 거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줌마 갈 길이나 가세요. 아줌마가 뭔 상관이예요. 얘가 학교에서 우리한테 완전 재수없게 군단 말이예요. 그래서 손봐주는 건데 아줌마가 얘 계속 재수없는 거 책임질거예요?"라고 대든다.


같이 소리질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얘가 잘못했고 혼나야하는 상황이라면 선생님이 해야하는 것이고, 이 아줌마가 보기에는 너희들이 이 아이를 왕따시키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밖엔 안 보이는데, 초등학교에는 왕따 방지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고 담당선생이 있으니 그 선생에게 책임지고 너희들과 이 아이를 인계하겠다고 했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조카가 있어서 알고 있었다.) 

아직 그나마 학교나 선생님, 부모님이라는 게 먹혀드는 나이인지 한 아이가 주춤거리면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뒤따르기 시작하며서 나와 함께 있던 아이이름을 부르고는 "너 엄마한테 얘기하면 죽어! 몇 반인지도 얘기하면 죽여버릴거니까 XXX XXX."

그런데 좀 의외였던 것이 내 옆에 있는 아이는 분명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그 태도가 너무 담담했다. 그저 지겹다는 표정이었다. 짧게 해본 이야기로는 전학온 날부터 특별한 이유없이 놀림과 왕따가 시작되었고 부모님들도 이미 알고있고 담임도 어느 정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학교에 있을 때는 건드리지 못하는 듯 등하교길만 잘 피해서 다니면 되는데 오늘은 재수없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왕따와 폭력에 익숙해진 초등학생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눈에 깃들은 지겨움과 체념의 표정은 아이가 아니라 꼭 삶에 지친 어른의 그것과도 같았다.
자기 아이가 왕따임을 알고있으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부모는 얼마나 안타까울까.

또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부모도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가 왕따가 아닌, 왕따를 시키는 주체라는 걸 아는 부모는 이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내 아이가 당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Posted by 네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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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4 09:14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머..

    에휴..정말..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울 쭈니도 얼마후면 학교를 다니게 될텐데..이런일 겪지 말라는 법 없고 그 나쁜 아이들중 하나가 되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요.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기 참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2011.11.24 09:18 [ ADDR : EDIT/ DEL : REPLY ]
  3. 헉...당황스럽네요....
    아 정말 이런거 볼때마다 너무 겁나네요 ㅠ.ㅠ
    by. 아내

    2011.11.24 09: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4 09:30 [ ADDR : EDIT/ DEL : REPLY ]
  5. 왕따 방지 프로그램이란게 있지만 그게 그닥 실효성은 없어요.
    울 큰애가 그러던데요, 안맞게 얼른 강해져야겠다...
    늘 짧은 동화를 읽고 글쓰기를 시키는데, 엊그제 그렇게 적었더라구요.
    제 동생이 자꾸 맞고 놀림 당하는게 그렇게도 보기 싫었나 보더라구요. 너무 슬펐다는...

    2011.11.24 09:42 [ ADDR : EDIT/ DEL : REPLY ]
  6. 이런 이야기 볼때마다...들을때마다...
    내년에 우리 가림이 학교 가는데...어쩌나..걱정입니다...ㅠ.ㅠ
    아이들 공부도 우리때보다 수준이 더 빨라졌던데 이런것도 더 앞당겨지다니...ㅡ,.ㅡ;;
    초등학생들이 뭘 안다고 말예요...ㅜ.ㅜ

    2011.11.24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딱 학교폭력의 현주소를 보는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어울릴법한 상황이죠.
    이 애들이 중학생이 되면 폭력의 강도가 더 세집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말 다했죠.
    그때는 폭력을 당하는 애들이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거죠...
    부모님? 선생님? 다 소용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위해서 학교폭력이나 왕따같은
    문제는 아직 애들이 어린 초등학교때 교육이 이뤄지고, 처벌해야 하는데 사실 초등 선생님들은
    별 관심도 없지요.. 그냥 애들 장난이라고 치부하거나, 알면서도 번거롭고, 귀찮아서 나서질
    않습니다.

    2011.11.24 09: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학교폭력은 어른들 잘못이 큽니다.
    가정에서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사회가 노력해 나갈때 근절될 수 있습니다.

    2011.11.24 09: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뜨개쟁이

    무섭네요..
    아이들키우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니예요.
    가끔 아이들이 친구랑 다투고 오는날이면 그땐 다 그렇지~하다가도
    문득 혹시 싶기도 하더라구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거겠죠...

    2011.11.24 10:06 [ ADDR : EDIT/ DEL : REPLY ]
  10. 이 장면이 우리 주위에서 익숙해진 풍경이라는게 답답하네요.
    학교와 교육 당국의 형식적인 대처가 얼마나 무책임한지 안타깝네요.

    2011.11.24 10: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런거 정말 흔한 겁니다. 이런게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진짜 -_-;;

    2011.11.24 1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우리 아이가 한때 왕따였던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이나 부모나 힘든일이엇습니다..결국은 큰 싸움끝에 우리아이가 상대아이들을 두드려 패는 사태까지 갔었는데 결국은 졸업을 하게되면서 끝나더군요..

    2011.11.24 18: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사리분별이 확실하지 않고 정신세계가 덜 완성된 상태인 아이들의 이기심과 잔인함이 더 크다고 본적이 있어요.
    모르고 지은죄가 더 나쁘다는 말같이. 아직 그게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일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훨씬 더 큰 악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교육이 정말 중요한걸거예요..

    2011.11.26 1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